연말이 되면 괜히 지나간 시간들이 자꾸 떠오르는 분들,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후회되는 말 한마디, 조금만 더 일찍 했더라면 싶은 고백들. 그럴 때마다 저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이 영화 포스터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겨울과 참 잘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로 끝나지 않는 이유
어바웃 타임은 영국을 배경으로 한 타임슬립(Time Slip) 장르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타임슬립이란 특정 인물이 과거나 미래로 이동하는 설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사 기법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규칙이 꽤 독특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주먹을 쥐고 가고 싶은 시간을 떠올리면 이동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경험하고 기억하는 시간대로만 돌아갈 수 있고 미래로는 갈 수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이 설정이 처음에는 꽤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저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으니까요. 주인공 팀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고백하고 시간을 되돌려 다시 시도하는 장면은 귀엽기도 하고, 동시에 저렇게 자주 써도 괜찮은 걸까 하는 조마조마함이 내내 따라옵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타임슬립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바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입니다. 나비효과란 아주 작은 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으로, 이 영화에서는 팀이 시간을 돌릴 때마다 주변 상황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동생을 사고에서 구하려 과거로 돌아갔다가 정작 자신의 딸이 다른 아이로 바뀌어버리는 장면은 이 나비효과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어바웃 타임을 단순한 로맨스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의 진짜 힘이 바로 이 나비효과의 무게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어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능력만으로 얻을 수 없다는 걸 팀 스스로 깨달아 가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사랑과 상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인생 수업
영화 속 로맨스 서사(Romantic Narrative)는 레이첼 맥아담스가 연기한 메리와의 만남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로맨틱 내러티브란 두 인물이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관계가 발전해 가는 이야기 구조를 말하는데, 레이첼 맥아담스가 나오는 영화는 유독 이 구조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저는 이걸 확신에 가깝게 말할 수 있는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이 대체로 따뜻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팀과 메리가 처음 만나는 블라인드 레스토랑 장면은 지금 봐도 설레는 장면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목소리와 감각만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설정이 제겐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쓰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끌렸다는 팀의 반응이 오히려 더 진짜 같았습니다.
그렇게 결혼까지 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아버지와의 관계로 무게중심이 이동합니다. 아버지의 암 진단과 시한부 선고가 등장하면서 영화의 톤이 달라지는데, 이 부분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성숙한 사랑보다 풋풋한 사랑이 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핵심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인생 수업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어바웃 타임이 전달하는 삶의 태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평범한 하루를 있는 그대로 살아보기
- 같은 하루를 불안 없이 다시 살아보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 결국엔 시간을 돌리는 능력 없이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이 세 단계가 영화의 메시지 전체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이 조언은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마음에 남습니다.
비 내리는 결혼식과 OST, 그리고 이 영화가 남기는 것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결혼식 장면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인데, 팀은 시간을 되돌리지 않습니다. 이미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메리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인 웨딩 연출과 다르게 연출한 부분인데, 영화의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그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이입(Emotional Immersion)의 측면에서도 어바웃 타임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감정 이입이란 관객이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동화되어 실제처럼 느끼는 경험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다루면서도 관객이 쉽게 동화될 수 있도록 일상적인 감정들을 촘촘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저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중간중간 웃음이 터졌는데, 그 웃음이 억지스럽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영화음악(OST) 측면에서도 어바웃 타임은 빠질 수 없는 작품입니다. OST란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작된 배경 음악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의 수록곡들은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아 실제로 결혼식 신부 입장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분위기가 그만큼 현실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정과 서사 구조 측면에서 볼 때, 영화의 카타르시스(Catharsis)는 결말부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카타르시스란 감정적 긴장이 해소되며 관객이 정화되는 경험을 뜻하는데, 팀이 더 이상 시간을 돌리지 않기로 결심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 역할을 합니다. 능력을 내려놓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성숙임을 영화는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과대평가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기준으로 평론가 지수와 관객 지수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며,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설정의 일관성 부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그렇지만 저는 이 영화를 설정의 완결성보다는 감정의 진정성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적인 영화가 개인의 정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있는데, 감동적인 서사를 경험한 관람자일수록 일상의 의미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미래가 불안하고 지금 이 순간이 버겁다면, 어바웃 타임을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한 교훈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연인과 함께 봐도 좋고, 혼자 조용히 봐도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겨울밤에 담요 한 장 덮고 틀어놓으면 딱 맞는 온도의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