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이식받은 소녀가 트리플 액셀을 뛰고, 폐를 이식받은 남자가 건물 전체를 날려버리는 폐활량을 갖게 됩니다. 영화 하이파이브는 초능력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평범한 사람들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재인 배우를 처음 본 이후로 쭉 눈여겨봐 왔는데, 이 영화에서 그 배우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줄거리 - 장기이식이 초능력의 열쇠가 된다면
혹시 장기이식을 받은 후 기증자의 성격이나 취향이 전이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를 세포 기억 이론(Cellular Memory Theory)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포 기억 이론이란, 장기에 기억이나 정서적 정보가 저장되어 이식 후 수혜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로, 의학계에서는 아직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지만 이식 환자들의 실제 경험담이 다수 보고된 바 있습니다. 영화 하이파이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초능력자의 장기를 이식받으면 수혜자에게도 초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인데,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이 전제가 영화 안에서는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심장을 이식받은 완서는 어느 날 자신이 가로등을 한 손으로 뽑아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폐를 이식받은 지성은 재채기 한 번에 주변 사람이 날아갑니다. 신장을 이식받은 선녀는 자신의 초능력이 뭔지조차 모른 채로 합류하고, 간을 이식받은 약선은 남의 상처를 손을 얹어 낫게 해 줍니다. 이 설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각 장기마다 능력이 다르다는 점인데,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꽤 섬세하게 고민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심장은 힘, 폐는 폐활량, 간은 치유. 장기의 기능과 초능력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국내 장기이식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2023년 기준으로 뇌사자 장기이식 건수는 전년 대비 약 10% 이상 증가했습니다(출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실제 현실에서는 장기이식이 생명을 살리는 의료 행위인 만큼, 영화가 이 소재를 황당함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따뜻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수룩한 히어로들이 모이는 과정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처럼 화려한 슈퍼히어로물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하이파이브의 주인공들이 처음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MCU란,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히어로 영화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 시리즈를 의미합니다. 하이파이브의 히어로들은 그 어떤 MCU 캐릭터와도 다릅니다. 자신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된 완서는 그게 성장판이 열린 건 줄 알았다고 말하고, 선녀는 끝까지 자신의 초능력이 뭔지 모른 채 우왕좌왕합니다. 이 어수룩함이 오히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웃었던 장면은 선녀가 자신의 초능력 이름을 '후레시걸'로 지으려 했던 순간입니다. 메타인지, 즉 자신의 상태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캐릭터인데, 라미란 배우가 이 역할을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내서 보는 내내 실소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떤 씬에서는 코믹 연기인지 실제 반응인지 경계가 흐릿할 정도였습니다.
초능력자들이 모여서 팀을 구성하는 과정도 영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장사모, 즉 장기이식 사랑 모임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인데, 현실의 이식 환자 커뮤니티를 소재로 활용한 점이 설정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다음은 다섯 명의 초능력자 각자가 가진 능력을 정리한 것입니다.
- 완서 (심장 이식): 괴력. 가로등을 한 손으로 뽑아낼 정도의 신체 능력
- 지성 (폐 이식): 엄청난 폐활량. 주변을 날려버리는 수준의 호흡 능력
- 선녀 (신장 이식): 미확인. 영화 내내 스스로도 파악 못 함
- 약선 (간 이식): 접촉 치유. 타인의 상처를 낫게 하고 스스로는 물 한 잔으로 회복
- 마지막 인물 (각막 이식): 영화에서 직접 확인 요망
관람평: 빌런 영춘, 그리고 권선징악의 구조
사이비 교주를 빌런으로 내세운 것은 개인적으로 꽤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탐욕스러운 영춘은 초능력자의 장기를 강제로 이식받아 능력을 독점하고 신이 되려 합니다. 여기에 장기 탈취라는 윤리적 문제를 빌런의 행위와 연결시킴으로써 영화의 갈등 구조가 단순한 악당 대 히어로를 넘어서게 됩니다. 능력을 독점하려는 욕망과, 능력을 나누려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 구도 자체는 클래식하지만, 사이비 종교와 재단이라는 현실적인 소재 위에 얹어 놓으니 체감이 달라집니다.
영춘이 약선의 간을 이식받은 뒤 젊고 잘생긴 청년의 외모로 등장하는 장면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식을 통해 노화를 역행하는 능력까지 얻게 된다는 설정은 영화의 판타지 요소를 한 단계 더 높여줍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서사 전개가 조금 빠르게 처리된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빌런의 동기와 배경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즉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한다는 서사 구조는 고전적이지만 관객에게 가장 안정적인 쾌감을 주는 공식입니다. 저는 이런 구조를 좋아하는 편인데, 하이파이브는 그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나갑니다. 선한 사람들이 모여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 것은, 결국 각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충분히 쌓였기 때문입니다.
앙상블 영화(Ensemble Film)란, 단일 주인공이 아닌 여러 캐릭터가 동등한 비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형식을 말합니다. 하이파이브는 전형적인 앙상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베테랑 배우들의 조합이 이 구조를 탄탄하게 받쳐줍니다. 제 경험상 앙상블 영화는 캐스팅에 따라 완성도가 크게 달라지는데, 이 영화는 그 면에서 확실히 성공적입니다.
케미스트리(Chemistry), 즉 배우들 사이의 호흡과 상호작용이 영화 전체의 에너지를 좌우하는데, 하이파이브는 이 케미스트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있습니다. 안재홍의 너무 자연스러운 허당 연기는 조금 과하다 싶을 순간에도 튀지 않고 스며들고, 라미란 배우의 코믹 타이밍은 영화 전체의 조미료 역할을 합니다. 이재인 배우는 예전 드라마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한 모습이었고, 액션 씬에서의 존재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 영화 산업 통계에 따르면, 코미디 장르와 액션을 결합한 영화는 가족 단위 관객 유입에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하이파이브는 그런 의미에서 여름 시즌 가족 관람용으로 기획된 것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두 시간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하이파이브는 거창한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연결되어 함께 나쁜 것을 물리친다는 이야기, 그 단순함이 오히려 강점입니다. 복잡한 세계관이나 전작 지식이 전혀 필요 없고,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바로 즐길 수 있습니다. 올여름 킬링타임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무겁지 않게 웃으며 볼 수 있는 하이파이브를 추천드립니다. 후레시걸의 초능력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단언컨대, 여섯 명 중 가장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일 것입니다.